일ㆍ사랑ㆍ패션은 전세계 직장녀 공통 고민 공감대 탄탄

시즌7 같은 느낌 소소한 재미는 반감

크리스찬 디올, 오스카 드 라 렌타, 캐롤리나 헤레나, 크리스찬 라크르와, 랑방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까지. 말하기도 벅찬 이 명품 드레스들을 입고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분)가 돌아왔다. 2004년 시즌6를 끝으로 사라진 ‘섹스 앤 더 시티’는 4년 만에 137분짜리 영화로 재탄생했다. 6월 5일 개봉을 앞두고 팬들의 들썩거림은 현재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간간이 들려오던 영화 관련 소식에도 귀를 쫑긋 세우는 수많은 열성팬을 거느린 ‘섹스 앤 더 시티’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칙릿’의 교과서, 패션의 교과서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 ‘릿’(lit)에서 유래된 칙릿(Chick-lit)은 여전히 핫 트렌드다.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솔직하고 가볍게 다루는 칙릿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시작해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으로 이어져 왔다.

여성들의 관심사를 다루다 보니 패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협찬이 쇄도했다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는 명품 브랜드의 2008년 신상품이 총출동하며, 쇼윈도의 구두를 향해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던 캐리의 ‘워너비’ 스타일도 그대로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온 옷과 구두, 가방은 방송 다음날이면 바로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캐리가 사랑하는 구두 마놀로 블라닉은 이번 영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에도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 없는 요즘 여성들의 경향은 ‘섹스 앤 더 시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0년 연인인 빅과 마침내 결혼을 하기로 하면서 캐리가 요구한 결혼선물은 다름 아닌 커다란 옷장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배경이 아예 패션잡지사인 것처럼 패션은 ‘칙릿’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의상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 담당 패트리샤 필드가 맡았다. 4명의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300벌이 넘는 구두와 가방, 의상을 갈아입으며 화려한 로맨틱 블럭버스터의 저력을 과시한다.

▶명품은 알지만 사랑은 모른다?

캐리는 명품은 잘 알게 됐지만 사랑은 여전히 잘 모른다. 두 번이나 결혼생활에 실패한 전력의 10년지기 연인 빅(크리스 노스 분)은 마침내 캐리와 결혼을 결심하지만 순탄치가 않다. 보그지에 캐리의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이 게재되는 등 결혼식이 뉴욕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벤트가 되면서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미 결혼에 골인한 두 친구는 어떨까. 잘나가는 변호사로, 착한 남편 스티브와 귀여운 아들까지 낳고 평범하게 살던 미란다(신시아 닉슨 분)는 남편의 외도로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중국인 딸을 입양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 분)은 유일하게 행복한 결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샬롯의 두 번째 결혼이며 신랑은 자신의 이혼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며 살던 사만다(킴 캐트럴 분)는 이제 배우가 된 연하의 남자친구와 LA에서 동거 중이지만 한 남자에게 정착한 자신의 모습이 문득문득 낯설다.

사랑과 결혼은 잘나가는 뉴욕의 싱글여성들이나 한국의 보통 직장여성들에게나 똑같이 어려운 숙제다. ‘섹스 앤 더 시티’는 화려한 패션만 보여주는 ‘속 빈 강정’이 아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드라마와 영화 모두 일과 연애에 대한 여성들의 심리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에 아파하는 친구를 위해 멕시코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여자 4명의 우정도 ‘섹스 앤 더 시티’의 매력이다.

▶원조 멤버의 화려한 결합, 부족한 2%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는 배우는 물론 제작진까지 그대로다. 4명의 주인공과 그녀들의 남자들, 아이의 보모까지 드라마와 똑같고 시즌5, 6를 연출한 마이클 패트릭 킹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드라마의 매력을 그대로 살리는 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캐리와 샬롯의 아파트, 브루클린에 있는 미란다의 집까지 드라마와 똑같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드라마가 끝나고 경매와 기증을 통해 세계 각지에 흩어진 소품들까지 모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단, 캐리가 노트북으로 글을 쓰면서 독자들한테 독백을 내뱉던 창가의 책상은 새로 제작됐다고 하는데,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돼 있던 책상은 박물관의 엄격한 규정에 의해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는 뒷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온 느낌은 영화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완결판’을 자처한 영화는 시즌6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마치 시즌7의 느낌을 준다. 시즌 하나를 137분 만에 볼 수 있으니 압축적이고 극적인 재미는 더해졌지만, 소소한 매력은 거의 사라졌다. 드라마 속에서 캐리가 인생과 사랑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내뱉던 주옥 같은 대사들이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의 빠른 호흡에 맞추다 보니 캐리는 단 한 번도 책상에 앉아 칼럼을 쓰는 한가로운 시간을 갖지 못한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드라마보다 화끈한 몇 장면을 선사한다는 것은 장점 아닌 장점이라고 할까.

또 일부 남성에게서 ‘된장녀들의 교과서’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은 것처럼 남성 관객의 공감을 얻는 것은 여전히 무리일 듯하다. 물론 여자를 좀더 이해하고 싶은 남자들이라면 필수 관람이다.

오연주 기자/oh@heraldm.com